1.
중산리를 갔다.
맑은 겨울 하늘에 군데군데 구름뿐인 쾌청한 날씨였지만 차가 중산리에 가까워질수록 흐려지고 눈발도 날리고 있었다. 하루만에 천왕봉을 들러 백무동으로 내려와야하는 이들을 보내야 했기에 서둘러 내려주고 시동을 걸었다.
그냥 가기는 너무 싫었다. 그냥 그들을 따라 올라가고 싶었다. 너무도 변해버린 중산리였지만 저 위쪽 천왕봉의 눈바람과 제석봉의 고사목 지대가 그려지면서 차마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
보고 또 보고,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 사이에 능선이라도 보일까봐 까치발을 들어 올려다 보았다.
2.
삼일동안 비가 내렸다.
중산리 민박 툇마루에 걸터앉은 젊은 놈 다섯이서 술 먹다, 뒹굴다 삼일을 보냈다. 느지막하게 복학해서 어린 후배들과 오르겠다고 나섰지만 지리산은 우릴 쉽게 받아 들어주지 않았다. 괜시리 매표소 근처 어슬렁거리다, 잠시 비 멈춘 틈에 채비를 꾸려보고 나서려 하면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가 앞을 막았다.
그해 지리산 종주는 조계산으로 옮겼다가 부어대는 비를 홀딱 맞고서야 끝났다.
3.
횡단보도 건너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다. 아직 차 출발까지는 20분이 남았다. 붉은 등산복에 청바지, 배낭을 맨 모습이 등산하는 사람이었지만 함께 갈 멤버라곤 생각도 못했다. 역사기행이라곤 했지만 대부분 민가협이나 노조 관계자들이라 그렇게 예쁜(?!)이는 다른데 놀러가는 사람이라고 단정했다.(쩝..)
백무동에서 시작해서 죽을둥 살둥 겨우 참샘에서 자고, 장터목을 지나 세석에서 여정을 풀고, 연하천을 겨우 지나 토끼봉에서 하산한 칠불사. 왜 그리 서러웠는지. 제대한지 이틀된 짧은머리는 한시간을 소리내어 울었다. 뭐가 그리 울게 많았는지 그 이후 그토록 많이 울어본 기억도 없으면서......
그녀는 20년째 내 옆에 있다.
4.
지리산 근처에 산지 4년째다.
종주를 몇번 했고 이러저런 인연이 커서 바위, 쓰러진 나무등걸, 산장 입구의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봄이면, 여름이면, 가을이면, 겨울이면 지리산을 가고 싶다. 능선을 달리던 그 날을 기억하고 싶다. 내미던 손 뿌리치던 그녀의 말간 얼굴을 보고 싶다.
하지만 아직 오르지 않았다. 얼마나 안 오를건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나는 나의 지리산을 사랑한다. 오르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지리산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